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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네스코 문화유산 인천 프런트와 영상팀에게 드리고 싶은 글 - "나는 오반석을 모른다."

title: 유티얼빡찬누리유티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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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손에 한 분씩 경기장에 꼭 데리고 오셔서 파검의 전사들에게 승리를 위해 힘찬 응원 부탁드립니다"

 

 

지난 3월 27일 구단이 팬들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당시 기준으로, '양손에 한 분씩 경기장에 데리고'오라고 했던 경기는 4월 1일 대구와의 경기였다. 이날은 인천 최고 인기스포츠구단 SSG 랜더스의 시즌 개막전이기도 했다. 야구로 이슈가 몰릴 수밖에 없는 가운데서도 8천명이 넘는 팬들이 모였다. 주말 경기 치고는 아쉬운 숫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SSG 개막전에 8천명이 넘게 입장했다는 것은, 정말로 많은 팬들이 '양손에 한 분씩' 경기장에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경기에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최악의 졸전을 펼쳤다. 아마 그 '양손에 한 분씩'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는 일은 드물 것 같다. 시즌권 구매자인 나도 다음 경기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경기였으니까.

 

 

산토끼는커녕 집토끼도 떠날 판인 이 경기는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되돌릴 수는 없다. 구단이 고민해야 하는 건 이 경기를 가지고 팬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다시 그들을 경기장으로 끌고 오느냐이다.  그래야 '양손에 한 분씩'데리고 온 사람들의 '양손'이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을 것이고, 그 손에 이끌려 왔다가 축구 같지도 않은 경기를 본 사람들이 다시금 인천에 관심을 가지게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 다시 대구전 매치데이캠을 돌려본다. 구단 관계자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당신이 한 사람의 인천 사람, 또는 누군가에게 손 붙잡혀 온 잠재적 팬이라 치자. 이 사람들이 90분 팀의 기대 골 값이 0.27인, 차마 축구라고도 할 수 없는 경기를, 이 좋은 봄날 야구를 포기하고, 꽃놀이를 포기하고, 돈과 시간을 써서 봤다고 치자. 그래도 뭐라도 건질게 없나 해서 유튜브에서 인천유나이티드를 검색하고 그 날의 매치데이캠을 봤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그 더럽게 재미없었던 경기의 복습일 뿐이다. 하이라이트의 질로 보면 그냥 쿠팡 하이라이트 보는 것이 더 낫다. 

 

 

대구전 매치데이캠에는 앞뒤로 약간의 인터뷰가 붙긴 했지만 좀 더 필요했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전 라운드 광주전 대패에 대한 선수들의 생각, 프로 데뷔전을 치룬 박승호의 이야기에 덧붙여진 선배들의 조언, 버스맞이 응원에 대한 선수들의 감상, 경기 전 라커룸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오고가는 이야기들, 하프타임 때 안풀리는 경기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장면들, 감독의 추가 주문, 경기 후 조성환감독의 강평에 덧붙여진 각 선수들의 소감, 다음 경기에 대한 각오, 그 게임에서 아쉬웠던 장면들을 각 선수들이 토로하는 장면 등등. 경기 장면을 찍고 있는 서너 대의 캠을 반으로 줄여도, 이렇게 선수단에 따라다니는 캠 하나만 붙었어도 그 게임의 서사를 끌어낼 수 있고 5라운드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단도 영상제작업체도 이런 의지는 없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다.

 

 

대전의 매치데이캠인 '오프더피치'는 조회수가 몇 만에 달한다. 그냥 한국의 프로축구팬은 다 본다는 얘기다. 나 또한 이 캠을 챙겨본다. 왜 이걸 챙겨볼까? 기업구단 돈 맛이 느껴지는 수많은 카메라들과 멋진 편집 때문에? 중계방송으로는 볼 수 없는 각도로 담아낸 골 장면들 때문에? 서포터, 일반관중, 벤치 등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리액션들 때문에? 아니다. '오프더피치'에는 선수들이 있고, 서사가 있다. 그 날 데뷔전을 가진 U22 선수의 긴장된 모습, 그에 대한 고참 선수들의 격려, 게임 시작 전 라커룸에서 외치는 화이팅과 감독의 주문, 주장의 스피치, 터널에서 타 팀 선수와 오가는 대화... 영상을 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전이라는 팀에 녹아들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조유민이, 임덕근이, 마사가, 이창근이, 주세종이, 이진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구단은 팬을 늘려가고, 대중의 관심을 붙잡아둔다. 이렇게 팬들은 결과가 좋지 않은 경기에서도 조성환 감독 말처럼 뭐라도 움켜쥐고 일어나게 된다.

 

자, 다시 시간을 돌려, 3월 27일 '양손에 한분씩 경기장에 데리고'오라는 문자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그 날 어떻게 어떻게든 사람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갔다. 인정에 호소했을 수도 있고, 밥을 산다, 술을 산다,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최근 대전에 사는 지인 부부를  아주 쉬운 방법으로 축구팬으로 만들었다. 한화이글스에 지친 그들에게 내가 던져준 것은 ‘오프더피치’ 링크 몇 개였다. 이들이 7라운드 울산전 티켓을 사고, 대전 유니폼을 입게 만들기까지 내가 필요했던 것은 링크 몇 개뿐이었다. 마침 대전은 그날 구단 역사상 최고의 경기를 했다. 이들은 아마 적어도 이번 시즌까지는 성실하게 대전구장을 찾지 않을까? 지금은 이런 시대다. 다시 인천을 돌아보자. 우리 '피치 위에서'를 보고, 사람들이 인천 선수를 알게 될까? 인천 구단에 어떤 끌림을 느낄까? 솔직해지자. 내가 봐도 재미가 없다. 호구처럼 MD사제끼고 원정까지 다 따라가는 나도 재미가 없다. 지난 시즌의 매치데이캠을 쭉 연결해서 봐도, 첫 아챔 진출이라는 기념비적인 시즌이었음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별로 없다. 보고 또 봐도, 이 팀과 선수들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새 들어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유민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조유민이 특정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어떤 말을 할 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오반석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오반석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운동할 때 어떤 루틴이 있고, 라커룸에서 동생들한테 어떤 말을 해주는 캡틴이고, 경기결과가 좋지 않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는 선수인지 알 길이 없다. 인천팬인 나는 조유민은 알지만 오반석은 모른다. 구단과 영상팀은 이게 어떤 의미인지 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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