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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Forever IUFC 2023] ① 인천의 영원한 축구 대통령, 김대중

title: 파검메이트포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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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드라마와 같은 시즌을 정말 많이 보냈습니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모두 이겨내고 어느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헌신해온 선수들이 많지만, 모두가 인천 소속으로 계속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번에 인천을 떠나는 선수들 중 특히 오랫동안 인천에 있었던 선수들에 대해서는 재조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특집 시리즈 글을 준비했습니다. 그 첫 주인공은 '축구 대통령' 김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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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대중 (金大中, Kim Daejung)

생년월일 : 1992.10.13

국적 : 대한민국

신체조건 : 188cm, 83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센터백

학력 : 전농초-경희중-경희고-홍익대

 

 

인천 합류 이전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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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고 시절의 김대중. 공교롭게 이 때도 파검 유니폼을 입은 모습.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꾸준히 서울 지역에서 축구를 배웠습니다. 전농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부에 입성했는데, 당시 그의 포지션은 공격수였습니다. 그러다가 경희중학교 시절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이후 해당 위치로 고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종종 스트라이커로 다시 기용되었고, 특히 고등학교 시절 기사 중에는 '부동의 원톱 김대중'이라는 표현까지 있었습니다. 이렇듯 김대중의 신체조건은 여러모로 매력적이었고, 감독으로 하여금 다양한 기용을 하고 싶게 만드는 무기였습니다. 고교 시절 김대중은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되는 기회를 얻는 등 뛰어난 수비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세트피스에서의 활약이 매서운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죠.

 

경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김대중은 홍익대학교에 합류했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도 주축 센터백으로 활약했고, 팀은 그가 있는 동안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렇게 체급을 끌어올리며 성장하던 그에게 프로에서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프로에 첫 발을 내딛은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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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린 모습이었던 김대중.

 

2014시즌 시작을 앞두고 김대중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의를 받게 됩니다. 당시 K리그에는 아직 드래프트 제도가 남아있었지만, 시범적으로 자유계약 선수 2명을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대부분의 대형 신인들은 자유계약 신분으로 구단에 합류했습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원하는 구단에 더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고, 구단 입장에서는 불확실한 드래프트 대신 확실한 영입 방법이 생긴 셈이죠. 인천은 이 때 가지고 있던 두 장의 카드를 연세대학교의 김도혁, 그리고 홍익대학교의 김대중에게 사용합니다. 당시 김대중은 대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또래보다 1년 일찍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습니다. 입단 당시 인천의 주전 수비진은 안재준과 이윤표가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K리그 무대에서 경험을 제법 쌓은 김진환,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출신 임하람이 있었죠. 거기에 당시 선수 본인의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전 경쟁을 쉽사리 이겨내기 어려웠던 김대중은 전반기동안 출전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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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색하다.

 

이 때, 김대중을 향한 임대 제의가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 당시 K리그 챌린지 승격 경쟁에 뛰어들었던 대전이었습니다. 대전은 당시 선수를 투명하게 영입하기 위해 선수선발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김대중은 이들의 선택을 받은 첫 영입이었다고 합니다. 프로 입단 반 년만에 임대를 떠나 기회를 얻은 김대중은 반 시즌동안 8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승격에 힘을 보탰습니다.

 

 

2015년, 1부의 벽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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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현과 경합하는 김대중.

 

임대가 끝난 뒤 인천에 돌아왔는데, 어째 팀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임금 체불 논란이 터지고, 수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등 엄청난 변화의 흐름이 불었죠. 기존 주전 선수였던 안재준은 입대했고 후보 멤버인 임하람은 임대를 떠났으며, 이윤표마저도 재계약이 늦어져서 시즌 시작 직전에야 팀에 재합류했습니다. 당시 팀에 수비 자원이 부족했기에 새로 영입된 요니치의 파트너로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김대중을 기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대중은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전하면서 인천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 경기에서 그는 나름대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으나, 마지막 순간 자책골을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불운하게도 다음 경기인 수원전에는 막판 치명적인 패스 미스를 범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온전히 김대중만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수비수 김대중은 불안하다'라는 인식이 생긴 시초였습니다. 정작 3라운드 전북과의 경기에서는 무지막지한 수비력을 선보여 MOM + 주간 베스트 11 선정을 독식하는 활약을 선보였는데, 아쉽게도 이 활약을 일관적으로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분명 재능은 있었으나 집중력 저하가 자주 일어나서 팬들 사이에서도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시즌 중반부터는 김진환이 폼을 올려 김대중 대신 주전으로 나섰고, 후반기에는 이윤표까지 주전 경쟁에 합류했습니다. 자연스레 김대중의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이 시점에서 구단은 이미 '스트라이커 김대중' 활용 계획을 실천했습니다. 당시 케빈의 백업 공격수가 이효균 하나였던 구단 사정 상 팀에 변화를 줄 카드가 부족했는데, 피지컬과 제공권은 압도적이었던 김대중은 당시 팀 선수들 중 그나마 제일 적합한 조커였습니다. 덕분에 후반기에는 간간히 최전방에 투입되었고, 큰 활약은 없었지만 소소한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습니다. 1부에서 처음으로 기용되며 부족함을 드러냈지만, 가능성 역시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수비진 세대교체의 열쇠?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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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득점으로 승점 3점을 따낸 김대중과 그의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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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덤벼~

 

해가 지나고 2016시즌에도 김대중은 인천에 잔류했습니다. 경쟁자 중 하나였던 김진환이 재계약을 맺었으나 갑자기 이적하게 되며 입지가 올라가는가 싶었지만 조병국이 영입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즌 초에는 요니치-이윤표 라인이 주로 가동되었고, 이후 조병국이 이윤표를 밀어내는 와중에 김대중의 위치는 4순위 센터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백쓰리로 전환하면서 출전 기회가 조금씩 늘어났고, 이윤표가 징계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선발로 출전해 좋은 폼을 보여줬습니다. 2015년에 비하면 확실히 성장했다는 평이 주류였죠. 7월 초 제주와의 경기에서는 극적인 헤더 득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해당 득점은 김대중의 프로 데뷔골이었죠.

 

시즌 막판에 다시 백포로 전환하면서 김대중의 입지는 다시 애매해졌습니다. 요니치, 조병국, 이윤표보다는 아직 후순위에 있는 선수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기형 감독도 김대중을 보고 김도훈 감독과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스트라이커 기용'. 물론 플랜 A는 아니었지만, 계속 염두에는 두고 있던 것 같습니다. 잔류가 걸린 시즌 최종전에 케빈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이 어렵게 되자, 이기형 대행은 그간 전술적 이유로 외면했던 벨코스키를 선발로 투입합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간 뒤, 이기형 대행은 벨코스키를 빼고 김대중을 최전방에 세우는 모험수를 꺼내들었죠. 당시에는 '김대중=수비수'였기 때문에 상당히 파격적인 수였지만, 김대중은 공중볼을 죄다 따내면서 경기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김대중이 중앙에서 버텨준 덕분에 측면에는 많은 기회가 열렸고, 끝내 김용환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인천은 잔류에 성공합니다.

 

주전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전보다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김대중은 수비진의 미래로 기대를 모았고,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던 선수였죠.

 

 

마침내 등장한 드라마 집필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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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수비진을 뚫으려 노력하는 스트라이커 김대중.

 

시즌 시작을 앞두고 요니치, 조병국이 팀을 떠나면서 김대중의 입지에도 변화가 생길 듯했습니다. 하지만 부노자, 채프만이 영입되면서 주전과는 거리가 생겼죠. 설상가상으로 신인 하창래 역시 생각보다 빠르게 팀에 적응했고, 백쓰리 전술을 쓸 때는 김경민 역시 기회를 자주 받았습니다. 그간 보여준 성장에도 불구하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엔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반기에는 그의 얼굴을 보기 어려웠죠.

 

그런데 이 때, 그의 축구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팀의 원톱 자리가 텅텅 비어버리고 말았죠. 달리는 도가 지나친 부진을 이어갔고, 웨슬리 역시 딱히 나을 건 없었습니다. 이효균도 부진과 부상에 시달리며 신뢰를 잃었고요. 특히 7월 중순에 웨슬리가 징계를 받아 아예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 한 번 벌어졌습니다. 최전방에 기용할 선수가 없어지자, 이기형 감독은 그 전부터 최전방을 올라가봤던 김대중을 아예 선발로 내기로 결정합니다. 아무리 간헐적으로 뛰어본 포지션이라고 해도 주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 선발로 넣는 건 엄청난 도박입니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상황이었죠.

 

그러나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스트라이커 첫 선발 경기에서 바로 도움을 올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무려 세 경기 연속 도움을 기록하는 진풍경을 연출했죠. 더욱 소름돋는 건 단순히 머리로만 기록한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종종 킬패스를 넣어준다던지, 상상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플레이들이 나오면서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해서 새 공격수가 영입돼도 김대중을 기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엔조가 영입되면서 확실한 주전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김대중은 여전히 주요 공격 루트였습니다. 엔조가 컨디션을 빠르게 끌어올리지 못했고, 웨슬리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기에 김대중을 계속 쓸 수밖에 없었죠. 이 와중에 김대중은 본인이 올린 크로스를 최종환이 헤더로 득점하는 무언가 뒤틀린 장면까지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 이 시즌 김대중은 5도움이라는 상당한 스탯을 쌓으면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임에도 득점이 없었다는 점이 지적받았지만, 애초에 진짜 공격수가 아닌 김대중이었기에 당시엔 이런 지적이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기적형 공격수' 김대중의 이야기는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첫 센터백 주전이 된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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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투혼을 보여주는 김대중.

 

한 시즌을 마치고 다시 인천은 프리시즌에 돌입했습니다. 이번에도 인천은 이런저런 시끄러운 상황에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적시장 행보가 제법 공격적이었습니다. 역시 팀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최전방 공격수였습니다. 김대중 카드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고, 엔조-웨슬리 등이 모두 떠났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인천의 선택은 몰도바 리그를 폭격하던 무고사였고, 이 선택은 모두가 알겠지만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무고사 영입의 여파로 더이상 김대중이 스트라이커로 뛸 이유는 없었습니다. 이기형 감독은 대신 김대중을 다시 센터백으로 기용하는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초반에는 부노자-이윤표가 주전으로 나섰지만, 이윤표의 노쇠화가 두드러지면서 김대중은 점차 자주 출전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강지용도 기대 이하의 폼을 보여주면서 마침내 주전으로 올라섰죠. 그러나 당시 인천은 너무나도 실점이 많았고, 김대중 역시 이로 인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주전 수비수가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었죠. 이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신인 김정호가 팬들에게 기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대신 김정호를 주전으로 기용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시즌 중반에 안데르센 감독이 새롭게 부임했습니다. 안데르센이 부임하면서 일부 선수들의 입지가 바뀌었지만, 김대중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김대중은 왜 본인이 주전인지 어느 정도 증명해냈습니다. 경쟁자들에 비해 능숙한 빌드업과 경험을 보여주면서 비교우위를 증명해냈죠. 제법 파란만장한 시즌이었지만 인천은 잔류했고, 김대중은 처음으로 본인의 주 포지션에서 주전으로 기용됐습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김대중 본인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즌이 아닐까 싶네요. 여담으로 이 시즌에도 공격 지역에서 미친 제공권을 보여주면서 득점의 기점으로 작용한 장면이 있었는데, 이때문에 김대중 공격수론이 계속 제기됐습니다. 역시 매 해마다 한 건씩 하는 선수다운 퍼포먼스였죠.

 

 

상주 상무에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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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크워터.

 

2018시즌을 마친 후 한석종과 함께 입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상주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본인도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이 뛰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허리 부상도 겪었고, 포메이션 변경도 있었죠. 거기에 2020시즌이 코로나로 인해 늦게 시작된 점도 선수 본인 입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종적으로 리그 3경기 출전에 그친 채 인천으로 돌아오게 됐죠.

 

 

구단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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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020년 8월, 김대중은 마침내 전역하여 인천 스쿼드로 복귀했습니다. 복귀 당시 인천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전반기에 극심한 부진을 보인 결과 강등후보 1순위로 몰렸고, 스쿼드 상태도 어수선했죠.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은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는 큰 리스크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성환 감독은 김대중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확실한 장점을 가졌고, 누구보다도 확실한 결과를 만들었으니까요.

 

전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대중은 간간히 경기에 투입되었습니다. 다만 선발은 아니었고, 그의 원래 포지션인 센터백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은 최전방이었지만 가끔은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 어딘가에 투입되어 상대의 골킥과 공중볼을 끊는 특수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조성환 감독은 그의 장점에 주목하여 그를 활용해보기 위해 노력했고, 김대중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분투했습니다. 하지만 인천의 상황은 전보다 나아졌음에도 여전히 불리했고, 마지막 두 경기만이 남았습니다. 두 경기를 다 이겨야 확실한 잔류, 한 번이라도 비기면 위기, 지면 끝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인천은 그 중 첫 경기인 부산전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강등이 말 그대로 눈 앞에 다가온 순간이었죠. 이 상황에서 조성환 감독은 김대중 카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공격수'라는 명확한 역할을 주문했죠.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김대중은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동윤까지 연속으로 골 맛을 보면서 인천은 2분만에 역전을 달성합니다. 끝내 이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따내며 인천은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고, 김대중은 또 한번 주인공이 됩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교체로 들어온 김대중은 제공권을 바탕으로 승기를 굳히며 팀의 잔류를 도왔고, 팀과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짧지만 여전한 임팩트,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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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을 얻어내며 경기 분위기를 바꾼 김대중.

 

극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2021시즌 김대중의 입지는 전보다 확연히 줄었습니다. 원래의 자리였던 센터백에는 김광석을 필두로 보강이 이뤄졌고, 스트라이커 자리엔 무고사와 김현이 있었습니다. 특히 김현의 존재는 김대중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제공권이라는 핵심 아이덴티티가 겹치기 때문에, 김대중이 차별화할 방법이 많이 줄었죠.

 

FA컵에서는 간만에 센터백으로 출전했지만, 안양에게 크게 당하면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습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센터백 김대중'은 볼 수 없었고, 간간히 공격수로만 출전하게 됩니다. 기회가 적긴 했지만 5월 수원FC 원정에서 날린 회심의 슈팅이 상대의 손에 맞아 페널티킥을 얻었습니다. 이 기회를 무고사가 마무리하면서 승점 1점 획득에 큰 공을 세웠죠. 짧은 시간이지만 김대중 효과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모습을 보긴 어려웠습니다. 특히 김현의 폭주가 시작되면서 김대중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죠. 결국 시즌 최종전에 더이상 바뀔 게 없는 상황이 돼서야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 때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고, 2017년 이후 정말 오랜만에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하는 경기가 됐습니다. 확실히 경기 감각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 와중에도 기막힌 본능으로 1도움을 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괜히 김대중이 아니라는걸 증명한 셈이죠. 이미 1부리그에서 김대중의 경쟁력은 많이 약해진 듯 싶었으나, 그런 와중에도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계속 만들어낸 시즌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지막,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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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끝까지 김대중다웠다.

 

팀에 여전히 잔류했지만, 입지는 좋지 못했습니다. 계약도 마지막 해에 접어들었고 선수단 보강도 이뤄졌죠. 거기에 시즌 초에는 무고사의 폭격이 이어지면서 김대중에게 기회가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팬들도 이해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아쉬워했죠. 그만큼 김대중이 인천에 남긴 것이 많았으니까요.

 

여름에 무고사가 이적하게 되면서 김대중에게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가 빠르게 영입되었고, 에르난데스-김보섭 조합이 맞아떨어지면서 기회가 제대로 오진 않았습니다. 잠깐 출전하긴 했지만 그 뿐이었죠. 그렇지만 투입된다는 소식에 경기장에서 박수 갈채를 받을 정도로 김대중이라는 존재는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9월 수원 원정이 됐습니다. 인천은 당시 시즌 초에 비해 떨어진 퍼포먼스를 보여 고전 중이었습니다. 에르난데스가 부상을 당하면서 공격력도 다시 죽었고, 경기력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결국 조성환 감독은 김대중을 명단에 다시 넣기 시작했죠. 해당 경기에서 인천은 이강현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순식간에 3실점을 당해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희망이 없어보이던 그 순간, 교체로 들어온 김대중이 만회골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끌어올렸습니다. 거기에 그의 경합이 발단으로 작용해 막판 김민석의 동점골까지 터지면서 인천은 3 : 3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이 승점으로 파이널 A 진출도 확정됐죠.

 

아쉽게도 해당 경기는 김대중의 마지막 인천 소속 경기가 됐습니다. 벤치에는 간간히 앉았지만 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구단도 험난한 경쟁에 직면하여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드라마를 만든 걸 보면 김대중은 끝까지 김대중다웠구나 싶습니다.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나게 됐지만, 여전히 김대중은 팬들의 마음 속에 남을 선수입니다.

 

 

여담

 

- 홍익대학교 시절 그를 지도했던 감독이 바로 김종필 감독입니다. 게다가 청소년 대표팀에 잠시 소집됐을 당시 룸메이트는 동명이인 김종필 선수였습니다. JP와 인연이 많은 선수였네요.

 

- 원래는 이름을 김소중으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소보다는 대가 낫다라고 얘기하면서 김대중이 되었다고 합니다.

 

- 주변에서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별명으로 많이 통했는데, 의외로 고교 시절엔 같은 팀에 구대영이 있어서 이름으로 드립을 치는 일이 생각보단 적었다고 밝혔습니다.

 

- 성격이 굉장히 활발한 편이고, 구단 유튜브 컨텐츠 촬영 등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를 앞장세워서 비시즌 컨텐츠의 주연으로 등장했습니다. 주변 선수들과의 관계도 좋아보이고, 장난도 잘 주고받는 듯합니다.

 

- 활약도가 해를 지나면서 떨어졌으나, 도리어 인기는 해가 지나면서 늘어난 이례적인 선수입니다. 정작 그가 주전급으로 활약한 시즌보다 후보로 밀린 2020년 이후에 더 큰 인기를 얻었고, 아예 경기장에서 박수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 포지션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팀이 원하는 자리에서 뛰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포지션 변경 초기에는 그래도 중앙 수비수가 편하다는 뉘앙스로 언급했으나, 최근에는 공격수가 더 편하다/좋다는 쪽으로 변했습니다.

 

- SNS 계정이 없는 선수로 유명한데, 프로 초창기에는 제법 SNS를 많이 한 듯 싶습니다. 2015시즌 초기에 자책골-패스미스를 연달아 낸 직후 김도훈 감독이 SNS를 너무 많이 한다고 지적했고, 그 때를 계기로 SNS 계정을 지웠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김대중 선수의 인천 커리어를 돌아봤습니다. 긴 시간동안 김대중 선수와는 참 추억이 많았네요. 어느 팀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축구 커리어를 불태울 수 있는 좋은 팀으로 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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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검의12번째선수 24.03.27.23:10 13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