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프리뷰/리뷰 [슈퍼장문주의] 인천 잔디는 왜 이 꼬라지인가(feat. 한국의 잔디는 왜) 완결편

title: 2022 TRINITY (H)관망호랑이
302 22 24
URL 복사

※아실 분들은 다 아실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잘 아시는 분들은 스킵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또 영원한 미제인 우리나라 축구장의 잔디와 인천의 잔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네요. 이에 계속 생각해 왔던 바와 함께 이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으며 왜 인천 잔디,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 축구장의 잔디가 유독 좋지 않은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한 글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다만 고인물분들께서는 익히 아시는 내용이 다수 들어가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축구장에 깔리는 잔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분류로 서양 잔디, 그리고 동양 잔디로 나눠집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냥 잔디 열심히 키워서 심으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양 잔디든, 동양 잔디든 맞지 않는 저간의 사정이 있습니다. 

 

1. 서양잔디
말하자면 간단하게 말해서 잉글랜드 등에서 사용하는 잔디입니다. 일반적으로 골프장에서 사시사철 푸른색을 유지하는 잔디가 바로 이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왕포아풀이라고 해서 양잔디라고 하는데(이른바 켄터키 블루그라스, 엄밀히 말하자면 잔디는 아니지만) 빽빽하고 빼곡하게 자라고 빠르게 자생하기 때문에 스포츠 잔디로서의 기능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것과 이 서양 천연잔디의 푸르디 푸른 컨디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많이 든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 서양잔디들은 추위에 강하며 가뭄을 잘 견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이유는 축구는 원래 춘추 스포츠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장점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발휘되지 않습니다. 서양과 우리나라는 기후가 정반대로 고온에 다습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더욱이 이런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죠. 이 서양잔디들은 더위에 약하고, 건조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정말 잘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키우고 난 다음에 정말 많은 자원을 들여서 관리를 해 줘야 합니다. 스프링클러로 물을 지속적으로 보급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병해충과 잡초 제거 등은 기본입니다. 배토에 보파, 보식, 갱신 등의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잔디 관리 인력이 없으면 적절한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건조에 약하지만, 또 배수가 잘 안 되면 썩어버리는 성질도 있어서 경기장의 배수도 적절하게 신경써야 합니다. 장마기간이 긴 데다 이제는 동남아 수준의 집중 호우인 스콜도 자주 발생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양잔디가 뿌리를 내리다가 썩어 죽어버리는 일은 종종 발생합니다. 

 

추가로, 양잔디라는 별칭에 걸맞게 정말 잘 자라기 때문에 전체적인 자생과 고른 성장을 위해서는 잔디를 적절하게 깎아주는 작업도 주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괜히 서양 영화에서 잔디깎이 기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놔두면 잔디가 쭉쭉 자라서 토양의 양분을 흠껏 빨아먹고 자라서 땅이 황폐화되어버리는 일도 자주 발생합니다. 

 

2. 동양잔디
그러면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잔디를 심으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서양잔디가 있듯 동양잔디가 있습니다. 문제는 동양잔디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정확하게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동양잔디는 서양잔디의 특성과는 완벽하게 정 반대입니다. 저온에 약하고 고온에 강합니다. 

 

그래서 아열대 기후인 지역에서 많이 활용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그냥 고온에만 잘 사는’잔디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 녀석은 또 24도 이상에서만 잘 자생하고, 24도 이하로 떨어지면 누렇게 죽어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에 잔디들이 누렇게 죽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대부분 동양잔디들입니다. 저온에 약한 편이기 때문에 조금만 추워지면 수틀러서 깨꼬닥 죽어버리는 것이죠. 

 

1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다 요즘처럼 더웠다가 추웠다가 어제는 10도였다가 내일은 30도인 헤어진 전여친 변덕보다 더 심한 우리나라 날씨를 감안하면 동양잔디는 스포츠 경기용 잔디로는 빵점입니다. 사실 서양잔디보다 질감도 좋지 않아서 잘 심지도 않습니다. 관상면에서도, 기능면에서도 별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3. 하이브리드와 인조잔디
그래서 대체로 선택되는 것이 하이브리드와 인조잔디입니다. 하이브리드는 말 그대로 천연잔디 베이스에 빈 곳에 인조잔디를 섞어 넣는 것인데, 하이브리드를 쓰는 북패네 홈구장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름 제법 태가 좀 납니다. 

 

또,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도 하이브리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매우 효과적이라는 뜻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웸블리의 하이브리드 비율은 차이가 막대하다는 점...서울 잔디 하이브리드는 인조잔디 비율이 매우 높지만 웸블리의 하이브리드는 인조잔디 비율이 채 5%를 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패네 하이브리드는 다들 익히 아시다시피 비가 오면 쭉쭉 미끄러집니다. 스프링클러를 많이 틀어도 무지 많이 미끌어지죠. 인조잔디가 많으니 발생하는 단점입니다. 

 

더해서 인조잔디는 합성소재이기 때문에 한번 열을 받으면 이 열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회인야구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여름에 야구장에서 잘못하면 슬라이딩하다가 화상을 입을수도 있습니다. 저렴하고 기능적으로 뛰어나며 관리도 딱히 필요 없지만 축구에는 사실 적합하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비율이 높아지면 하이브리드의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죠.

 

4. 돔구장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축구장의 잔디 문제는, 현존하는 잔디가 자생하기 매우 힘든 우리나라의 환경적 요인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간헐적으로(혹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나오는 얘기가 ‘우리나라야말로 축구장을 돔구장으로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돔구장을 지을 경우 추춘제도 할 수 있고, 날씨와 장미와 집중호우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잔디 자생에도 도움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근거가 ‘야구장도 천연잔디 깔고 돔구장 쓴다’라는 것인데요. 


그런데 사실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것도 근거가 빈약합니다. 2023년 일본 닛폰햄파이터즈의 새 홈구장인 에스콘필드가 개장하기 전까지 돔구자엥서 천연잔디를 쓰는 곳은 미국 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잔디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인조잔디로 교체했습니다. 

 

돔구장은 크게 두 가지, 개폐형과 폐쇄형이 있는데, 폐쇄형으로 만들면 날씨의 영향을 덜 받겠지만 문제는 잔디의 생육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일조량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다들 잘 아는 채광기를 구매해서 써야 하는데, 야구가 160게임을 넘게 하다 보니 이 짓을 하느니 그냥 인조잔디로 바꾸자...라는 결론에 도달한 상황입니다.

 

개폐형도 기본적으로 열려 있는 곳이지만 폭우나 폭설 등 이벤트가 있을 때만 돔을 덮는 방식이기 때문에(사실 돔구장 뚜껑 한번 열었다가 닫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님) 개폐형은 애초부터 환경으로부터 잔디 생육을 위해 보호를 한다는 돔구장의 명분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5.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현재로써는 ‘서양잔디를 심어서 기르고, 많은 자원을 들이는 것’밖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당연히 매년 선수단 구성에 난항을 겪을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시민구단들, 그리고 모기업의 눈치를 보며 운영비를 타는 기업구단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푹신한 잔디를 자랑하는 외국 리그, 대표적으로 EPL의 잔디 유지비용은 경기당 평균 면당 8000~90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잔디를 교체합니다. 구장마다 시설이 달라서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행사나 혹은 다른 스포츠 행사들이 있을 경우 구장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감생심, 국내 K리그의 잔디 교체 주기는 평균 10년이라고 합니다(그마저도 빠른 편). 


더 큰 문제는 돈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디까지 들여야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가늠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대당 1~2억의 인공채광기를 사서 조사해주고, 경기장 배수를 원활히 해 주고, 전문 관리인을 도입해서 계속 관리하고, 수분을 잘 보급해주고, 썩지 않게 잘 관리해 준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버티고 뿌리를 내려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라운드가 얼었을 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는 것까지 해결하고 집중호우, 폭우에 잠겨서 죽어버리는 일까지 방지할 수 있을까, 건조함과 습함이 수시로 오가는 환경을 관리로 이겨낼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하는 의문이 나는 것입니다. 

 

투자의 기본은 투자 대비 성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을까에 대한 산출이 우선인데,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죠. 더욱이 우리나라의 기후는 올해, 내년, 내후년 계속 천변만화하고 있습니다. 구단들이 투자를 하는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기업구단도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투자를 하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입니다. 

 

6. 획기적 연구가 없이는
인천으로 따지자면, 상기한 단점들과 문제들에 더해서 구장을 잘못 지은 것(지붕으로 읺한 그늘, 통풍 문제), 그리고 클럽하우스가 없었던 문제들이 더해져서 다른 구장들보다 잔디가 심각하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잔디 불만만 투덜투덜 할 수는 없는 게 사실입니다. 기레기나 기레기 친구가 ‘우리나라는 잔디에 투자를 안해서’환경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무식한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나마 돈이 있는 지들 소속팀도 못하는 일을 누구보고 하라는건지). 물론 꾸준히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는 효과는 있겠지만, 다른 구단을 향한 비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유일한 방법은 연구를 통해서 획기적인 잔디 종자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걸 뒤집어서 말하자면 건조하면서 서늘하고(봄) 무지막지하게 덥고 비 많이 오고(여름) 또 건조하고 슬슬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며(가을) 눈이 많이 왔다가 안왔다가 무지막지하게 추운(겨울),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1년 내내 견디면서 뿌리를 내리고 자생할 수 있는 잔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라는 절망적 결론으로 도달합니다. 

 

우리나라 축구 잔디를 둘러싸고 이런 저간의 복잡한 사정들이 많이 얽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유스크랩

댓글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공유

퍼머링크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5월의 공지 | 중고장터, 사이트 분위기, 친목, 개인적인 당부 9 N title: 파검메이트포르테 18시간 전20:29 602 +76
공지 평점/MOM [2024 시즌] 인천네이션 선정 K리그1 10R 인천 유나이티드 vs 전북 현대 모터스 MOM 투표 (2024.05.02~2024.05.03) 18 N title: 파검메이트포르테 23시간 전14:50 343 +24
공지 공지 인네로드 작성가이드 9 title: 침착맨준아맘 24.02.04.12:57 1754 +58
공지 공지 [인천네이션 통합 공지] (필독 요망 / 2023.12.15 수정) 6 title: 파검메이트포르테 23.02.02.00:13 18818 +48
인기 자유 김도혁 세레머니에 우리딸 충격먹었다 ㅠㅠ 45 N title: 유티콘라돈투게더 4시간 전10:14 994 +115
인기 정보/기사 [K리그1 라이브] '기다렸던 인천의 코너킥 골' 최우진 왼발에서 탄생했다, "전날 잘 맞더라…델브리지 굿굿" 16 N title: AFC문지환No.6 2시간 전11:52 569 +60
인기 루머 신진호 21 N title: 세일러스 아이콘이태희 1시간 전13:31 562 +50
256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6분 전14:05 89 +14
255 칼럼/프리뷰/리뷰
image
무니 24.04.25.14:36 172 +12
254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24.16:20 131 +9
253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22.14:26 2076 +135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title: 2022 TRINITY (H)관망호랑이 24.04.20.19:00 302 +22
251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FOCUSONUNITED 24.04.18.16:22 376 +23
250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18.15:49 173 +16
249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스날이 24.04.18.14:54 251 +20
248 칼럼/프리뷰/리뷰
image
무니 24.04.12.13:48 236 +18
247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11.11:53 128 +11
246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09.13:01 109 +13
245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08.15:22 165 +13
244 칼럼/프리뷰/리뷰
image
무니 24.04.08.00:55 618 +60
243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05.16:31 408 +18
242 칼럼/프리뷰/리뷰
image
무니 24.04.04.23:40 232 +18
241 인유역사관
normal
무니 24.04.03.14:13 1308 +95
240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4.02.11:28 181 +11
239 칼럼/프리뷰/리뷰
image
무니 24.04.01.16:58 209 +9
238 칼럼/프리뷰/리뷰
normal
무니 24.03.28.14:29 796 +76
237 칼럼/프리뷰/리뷰
file
파검의12번째선수 24.03.27.23:10 132 +11